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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대교 붕괴 사고: 예고된 인재, 총체적 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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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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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10-21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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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대교 붕괴 사고, 人災의 결과로 끝났다. 1994년 10월 21일 아침부터 전화로 들어온 성수대교 붕괴의 소식은 무시되었다. 경찰과 소방 당국은 이를 장난 전화로 여겨 처리하지 않았다. 하지만 같은 내용의 전화가 빗발치자 헬기를 띄워 사태를 확인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까지 이미 40여분이 지나 성수대교는 붕괴되어 있었다.

성수대교는 서울의 강남과 강북을 잇는 중요한 교량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사고 당시에는 다리 중앙에 위치한 10~11번 교각이 무너지면서 붕괴되었다. 이로 인해 시내버스를 포함한 6대의 차량이 추락하였으며, 32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을 입었다. 대부분의 피해자는 시내버스 탑승자였는데, 이 버스는 무너진 교량에 걸쳐있다가 뒤집혀 추락했기 때문에 피해가 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희생자들은 대부분 직장인, 교사, 학생들이었다. 사고 시간이 출근이나 등교 시간과 겹쳐 발생했기 때문에 피해가 컸다. 특히 여중·고등학교 학생들이 가장 피해를 입었으며, 이들은 강남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성동구에 위치한 학교까지 통학하다가 사고로 인해 희생되었다. 이후 서울시교육청은 강남과 강북 학생들의 교차 지원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성수대교는 1977년 4월 착공하여 2년 반 후인 1979년 10월 16일 개통되었다. 당시 시공사인 동아건설은 다리의 기능보다는 미관에 더 집중하여 설계하였다. 국내 최초로 게르버 트러스 공법을 채택하여 교각 간 간격이 넓고 시원한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트러스 공법은 단점도 가지고 있었다. 미관을 강조한 결과 통행량이 증가하고 이음새에 문제가 생기면 붕괴될 가능성이 있었다.

성수대교 붕괴는 예견되었던 결과로, 이는 총체적인 난국을 초래하였다. 이 사건을 통해 다리의 구조와 설계에 대한 더욱 신중한 고려가 필요함을 깨닫게 되었다. 이와 함께 피해자들을 위한 안전 대책을 강화하여 비슷한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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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


좋은 뉴스 담아갑니다.

홍한*


이런 소식 정말 좋아요.

박성*


좋은 정보 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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