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체제 시작, 한국의 경제 국치의 날"
"협상을 위해 온 나"
1997년 12월 3일 오전 7시쯤,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약 12시간 뒤, IMF 구제금융 정책 의향서에는 세 명의 사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캉드쉬 총재, 임창열 부총리,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였습니다.
그 날은 IMF 체제가 공식적으로 시작된 날이었습니다. 한국 언론은 이를 경제 국지의 날로 기록했습니다.
1997년 1월 23일, 한보철강의 부도가 국가적인 부도 위기를 일으켰습니다. 한보그룹은 당시 정치적 로비를 통해 과도한 대출을 받아 재계 순위에서 14위까지 올라갔습니다. 이후 14위 기업이 갑자기 5조원에 이르는 빚을 지고 부도하면서 은행 자금 순환에도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다른 기업들도 차례로 부도를 나타내었고, 당시 국내 재계 순위 30위 안에 살아남은 기업은 겨우 11개뿐이었습니다.
외국 금융사들은 급히 자금 회수에 나섰습니다. 채무 상환 기간을 연장해주지 않았고, 지금 당장 갚아야 할 돈은 1500억 달러 이상이었지만 보유한 외환은 40억 달러에 불과했습니다.
같은 해 11월 16일, 캉드쉬 총재 일행이 가명으로 입국했습니다. 이들은 서울시 내 호텔에 머무며 구제금융을 전제로 정부 관계자들과 협상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정부는 "구제금융 신청은 결코 없다"고 밝혔지만 5일 뒤 구제금융 신청 방침을 발표했습니다.
결국 12월 3일, 이행각서가 캉드쉬 총재의 손에 전달되었습니다.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였던 김대중, 이회창, 이인제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김영삼 정부가 맺은 IMF 프로그램을 이행하기로 합의되었습니다...
1997년 12월 3일 오전 7시쯤,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약 12시간 뒤, IMF 구제금융 정책 의향서에는 세 명의 사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캉드쉬 총재, 임창열 부총리,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였습니다.
그 날은 IMF 체제가 공식적으로 시작된 날이었습니다. 한국 언론은 이를 경제 국지의 날로 기록했습니다.
1997년 1월 23일, 한보철강의 부도가 국가적인 부도 위기를 일으켰습니다. 한보그룹은 당시 정치적 로비를 통해 과도한 대출을 받아 재계 순위에서 14위까지 올라갔습니다. 이후 14위 기업이 갑자기 5조원에 이르는 빚을 지고 부도하면서 은행 자금 순환에도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다른 기업들도 차례로 부도를 나타내었고, 당시 국내 재계 순위 30위 안에 살아남은 기업은 겨우 11개뿐이었습니다.
외국 금융사들은 급히 자금 회수에 나섰습니다. 채무 상환 기간을 연장해주지 않았고, 지금 당장 갚아야 할 돈은 1500억 달러 이상이었지만 보유한 외환은 40억 달러에 불과했습니다.
같은 해 11월 16일, 캉드쉬 총재 일행이 가명으로 입국했습니다. 이들은 서울시 내 호텔에 머무며 구제금융을 전제로 정부 관계자들과 협상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정부는 "구제금융 신청은 결코 없다"고 밝혔지만 5일 뒤 구제금융 신청 방침을 발표했습니다.
결국 12월 3일, 이행각서가 캉드쉬 총재의 손에 전달되었습니다.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였던 김대중, 이회창, 이인제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김영삼 정부가 맺은 IMF 프로그램을 이행하기로 합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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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샛*
정말이지 이런뉴스는 올리지 말아주세요.
김한*
좋은 뉴스 담아갑니다.
홍한*
이런 소식 정말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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