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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 중 발생한 북파공작원의 이탈 사건과 그 배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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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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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08-23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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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8월 23일 오전 6시 경기도 부천군(현 인천 중구)의 실미도에서 훈련을 받던 공군 소속 684부대 북파공작원 24명이 교관과 기간병들을 살해하고 부대를 탈출했습니다.

이들은 무장한 채로 낮 12시 인천에서 상륙했는데, 이를 위해 육군 해안 경계 부대를 뚫고 인천과 수원을 오가는 버스를 탈취하여 서울 영등포와 청와대를 목표로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북파공작원들은 군인과 경찰들과 총격전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서울 동작구 대방동에서 진압 병력에 포위되었고, 더 이상 전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북파공작원들은 오후 2시20분에 버스 내에서 수류탄을 폭파시켰습니다.

버스에 탑승한 23명의 북파공작원 중 19명이 수류탄 폭발로 사망하고, 4명은 중상을 입고 체포되었습니다. 한 명은 실미도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살아남은 4명의 북파공작원은 1972년 1월 군사 재판에서 사형 판결을 받았고, 같은 해 3월에는 모두 총살되었습니다. 이들의 장례는 진행되지 않았으며, 시신은 암매장되었습니다.

라고 보도된 사건입니다.

북파공작원들은 684부대로서 김일성 등 북한 주요 인물의 암살 및 대한민국에 대한 북한의 도발 시 대응하기 위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창설되었습니다.

이 부대의 창설은 1968년 1월 21일에 발생한 김신조 사건에 기인합니다. 당시 북한은 김신조를 포함한 31명의 공작원들을 남파하여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려고 시도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684부대의 창설 목적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바로 북한의 무장공비가 청와대 인근까지 침투한 김신조 사건으로 인해 분노한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었다는 것입니다.

북파공작원들의 이번 사건은 대한민국 정부와의 대립을 나타내는 사건으로 불리며, 그 동안의 긴장 상황을 보여줍니다. 많은 분들이 이 사건으로 인해 북한과의 관계가 더욱 악화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는 항상 국가의 안보와 안정을 위해 힘을 쏟아야 한다는 것을 상기해야 합니다. 북한과의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협상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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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


좋은 정보 담아갑니다.

한혜*


정말 미래적인 기술이네요. 어서 빨리 상용화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홍한*


이런 소식 정말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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