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와 현대의 장관 격인 판서 기록 비교
조선시대 기네스북이 있다면 지금의 장관 격인 판서를 가장 많이 한 사람과 횟수는? 영·정조 시대로 조선시대에서 장관급 역할을 한 최대 판서는 박종덕입니다. 그는 40여 년간의 관직 생활 중 총 24번이나 판서를 했습니다. 이 중에서 관리들의 인사권을 쥔 이조판서만 18번이었습니다. 그는 역사적으로는 그리 유명한 인물은 아니었지만, 과묵하고 균형 잡힌 행정으로 왕들의 신임을 받았기에 이러한 업적을 이루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한, 정승을 가장 많이 한 사람은 숙종 때의 최석정입니다. 그는 열 번의 정승을 지냈으며, 그 중 현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영의정은 여덟 번을 맡았습니다. 그는 병자호란 때 주화론자인 최명길의 손자로, 조선 최고의 수학자로도 평가받았습니다. 이원익은 선조, 광해군, 인조 3대에 걸쳐 정권마다 두 번씩 여섯 번의 영의정을 역임했고, 청백리 이시백은 인조, 효종, 현종 때 병조판서만 일곱 번을 맡았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여러 임금에 걸쳐 "회전문" 인사가 가능했던 반면, 현대에는 한 사람이 장관급 이상 각료를 여러 번 역임하는 경우가 과거보다 흔치 않습니다. 정부 수립 이후 장관급 이상 정무직을 가장 많이 지낸 사람은 고건 전 국무총리와 진념 전 재정경제부 장관으로 각각 다섯 번씩 역임했습니다. 신현확 전 국무총리와 전윤철 전 감사원장, 오명 전 과학기술부 장관 등은 네 번씩 역임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같은 부 장관을 중임하는 사례는 이례적입니다. 해외에서도 드물게 발생하는 일이지만, 얼마 전 왕이 중국 외교부 장관으로 컴백한 사례가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교육부 장관 중임 사례가 유독 많았습니다. 박정희 정권 첫 법무부 장관인 권오병은 1960년대 중후반 두 차례에 걸쳐 문교부 장관을 역임했습니다. 연세대 명예교수인 안병영은 김영삼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 걸쳐 문교부 장관과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을 맡았습니다. 이러한 중임 사례는 보수·진보 정권 간에 모두 부름을 받았으며, 안 전 장관은 역대 교육부 장관 중에서 업무 능력이 가장 뛰어난 인물로 평가받았습니다.
또한, 정승을 가장 많이 한 사람은 숙종 때의 최석정입니다. 그는 열 번의 정승을 지냈으며, 그 중 현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영의정은 여덟 번을 맡았습니다. 그는 병자호란 때 주화론자인 최명길의 손자로, 조선 최고의 수학자로도 평가받았습니다. 이원익은 선조, 광해군, 인조 3대에 걸쳐 정권마다 두 번씩 여섯 번의 영의정을 역임했고, 청백리 이시백은 인조, 효종, 현종 때 병조판서만 일곱 번을 맡았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여러 임금에 걸쳐 "회전문" 인사가 가능했던 반면, 현대에는 한 사람이 장관급 이상 각료를 여러 번 역임하는 경우가 과거보다 흔치 않습니다. 정부 수립 이후 장관급 이상 정무직을 가장 많이 지낸 사람은 고건 전 국무총리와 진념 전 재정경제부 장관으로 각각 다섯 번씩 역임했습니다. 신현확 전 국무총리와 전윤철 전 감사원장, 오명 전 과학기술부 장관 등은 네 번씩 역임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같은 부 장관을 중임하는 사례는 이례적입니다. 해외에서도 드물게 발생하는 일이지만, 얼마 전 왕이 중국 외교부 장관으로 컴백한 사례가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교육부 장관 중임 사례가 유독 많았습니다. 박정희 정권 첫 법무부 장관인 권오병은 1960년대 중후반 두 차례에 걸쳐 문교부 장관을 역임했습니다. 연세대 명예교수인 안병영은 김영삼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 걸쳐 문교부 장관과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을 맡았습니다. 이러한 중임 사례는 보수·진보 정권 간에 모두 부름을 받았으며, 안 전 장관은 역대 교육부 장관 중에서 업무 능력이 가장 뛰어난 인물로 평가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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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한*
이런 소식 정말 좋아요.
박성*
좋은 정보 담아갑니다.
김한*
정말 대책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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