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이니치들의 투쟁: 공생을 향하여
일본에는 자이니치(在日)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용어는 재일 한국인과 재일 조선인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1945년 당시 약 2백만 명에 이르던 이들 중 상당수는 일본 해방 후 본국으로 돌아갔지만, 60만 명은 일본에 남았습니다. 그들은 "특별영주자"라는 모호한 지위를 부여받았습니다. 완전한 외국인도, 완전한 일본인도 아닌 존재로서 차별은 여전했고, 좋은 대학을 졸업하더라도 취업이 어려웠습니다. 또한 참정권도 가지지 못하였으며, 한국과 북한의 갈등 속에서 재일 교포들 역시 지지단체들로 나뉘어 갈등을 겪었습니다.
그 가운데 자이니치들은 권리 향상을 위한 투쟁을 이어나갔습니다. 원자폭탄 피폭으로 인한 치료를 받을 권리를 위해 싸웠고, 한국 국적을 유지하면서도 일본에서 변호사가 될 수 있도록 싸웠습니다. "<공생을 향하여>"는 이러한 자이니치들의 투쟁사를 그린 책입니다. 저자인 다나카 히로시 히토쓰바시대 명예교수는 오랫동안 재일 외국인 문제에 대한 목소리를 내온 일본의 대표적인 지식인입니다. 이 책은 마이니치신문 출신 언론인의 인터뷰 형식으로, 다나카 교수가 반세기 동안 직접 참여하거나 가까이서 지켜본 자이니치들의 투쟁사를 시간순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1924년에서 2014년 사이 동안 살았던 손진두는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습니다. 1944년 가족과 함께 히로시마로 이주한 이후, 그는 다음 해 원자폭탄 폭발로 인해 피폭당했습니다. 일본 이름인 미쓰야마 후미히데를 갖고 있었지만, 패전 후 일본은 그를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외국인으로 등록되지 않은 채 1951년 그는 일본에서 쫓겨났습니다. 1970년 피폭 치료를 위해 여러 차례 일본에 밀입국을 시도한 그는 8개월 징역형을 받게 되었으며, 이때 다나카 교수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다나카 교수는 "피폭자 건강수첩"이라는 제도에 국적 제한이 있다고... (이하 생략)
그 가운데 자이니치들은 권리 향상을 위한 투쟁을 이어나갔습니다. 원자폭탄 피폭으로 인한 치료를 받을 권리를 위해 싸웠고, 한국 국적을 유지하면서도 일본에서 변호사가 될 수 있도록 싸웠습니다. "<공생을 향하여>"는 이러한 자이니치들의 투쟁사를 그린 책입니다. 저자인 다나카 히로시 히토쓰바시대 명예교수는 오랫동안 재일 외국인 문제에 대한 목소리를 내온 일본의 대표적인 지식인입니다. 이 책은 마이니치신문 출신 언론인의 인터뷰 형식으로, 다나카 교수가 반세기 동안 직접 참여하거나 가까이서 지켜본 자이니치들의 투쟁사를 시간순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1924년에서 2014년 사이 동안 살았던 손진두는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습니다. 1944년 가족과 함께 히로시마로 이주한 이후, 그는 다음 해 원자폭탄 폭발로 인해 피폭당했습니다. 일본 이름인 미쓰야마 후미히데를 갖고 있었지만, 패전 후 일본은 그를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외국인으로 등록되지 않은 채 1951년 그는 일본에서 쫓겨났습니다. 1970년 피폭 치료를 위해 여러 차례 일본에 밀입국을 시도한 그는 8개월 징역형을 받게 되었으며, 이때 다나카 교수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다나카 교수는 "피폭자 건강수첩"이라는 제도에 국적 제한이 있다고...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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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샛*
정말이지 이런뉴스는 올리지 말아주세요.
김한*
정말 대책없네요.
김한*
좋은 뉴스 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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