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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백자의 아름다움과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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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회

작성일 23-07-20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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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백자, 군자지향 전시회 관람기

5월에는 리움미술관에서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 전시회를 관람하였다. 이 전시회에는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조선백자 59점 중 31점을 첫 전시실에서 만날 수 있었다. 조선시대 궁궐에서 사용된 청화백자를 비롯하여 왜란과 호란 시기에 만들어진 철화백자와 달항아리, 그리고 후기에는 채색 장식이 추가된 자기까지, 조선백자의 500년 역사를 만날 수 있었다. 이 가운데 1996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는 당시 아시아 고미술품 중에서도 최고가로 841만달러에 낙찰된 용무늬 철화백자도 소개되었다. 리움미술관뿐만 아니라 간송미술관, 호림박물관,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과 같은 세계적인 전시관들도 그들의 보물들을 선보이고 있어서 두 번의 방문을 하게 되었다.

백자를 단단하게 구워내기 위해서는 1300도의 고온에서도 부스러지지 않는 유리질 백토가 필요하다. 흙의 비밀을 아직 알아내지 못한 일본과 서양은 비싼 중국산 도자기를 수입해야만 했다. 그러나 조선은 세종 때에 명나라 황제로부터 청화백자를 받게 되면서,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세종 시대에는 139개의 자기 제작소가 존재하였고, 세조 때에는 국가 관요를 설치하여 분업화로 높은 품질의 백자를 생산했다. 백자는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데, 세자들도 청자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백성들은 백자를 사용하는 것이 금지되었고, 청화백자를 사용하는 자는 경국대전에 의하면 곤장 팔십 대를 받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왜란과 호란 이후에는 제작 기반이 약화되었기 때문에 백자가 누런 빛을 띠게 되었다. 코발트 안료를 구할 수 없어서 철 안료나 구리 안료로 검붉은 철화백자나 진사백자를 만들게 되었다. 또한 달항아리도 만들어지게 되었다. 영정조 시대에는 문화가 점차 회복되기 시작했지만, 사치를 금한다는 정책 아래에서 고급 도자기 생산이 금지되었다. 그리고 정조 17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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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


이게 나라냐!!

한혜*


정말 미래적인 기술이네요. 어서 빨리 상용화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박성*


좋은 정보 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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