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

• 페이스북 공유
• 트위터 공유

히어로 없는 전쟁 영화, 덩케르크의 서사적인 아름다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는 전투기 조종사나 뛰어난 용병술을 가진 지휘자와 같은 전쟁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이 영화는 전쟁에서 신음하는 병사들을 구하기 위해 나타나는 히어로는 없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교차하며 전체적인 서사를 구성하는 이 작품은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해변에서의 일주일, 해상에서의 하루, 하늘에서의 한 시간은 각각 다른 시간축 안에서 공존한다. 일주일은 너무나 길고, 하루는 긴박한 순간의 연속이며, 하늘에서의 한 시간은 영원할 듯 짧게 느껴진다. 연료 잔량을 체크하는 장면은 촉박함을 순간순간 알려준다.

하지만 결국 어떤 측도에서도 승리하지 못하는 것이 이 작품의 핵심이다. 놀란 감독은 전쟁 영웅의 무용담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기존 전쟁 영화의 서사를 반대로 뒤집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략적인 침투와 공격, 뛰어난 용병술과 용맹을 가진 지휘자가 주요 타격지점을 정하고 승리하는 쾌감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이 영화는 도망가는 데 급급한 전사들의 내면의 갈등과 인간성을 그려낸다. 전투기에서 추락한 조종사와 첫아들을 전쟁에서 잃은 노인 도슨, 배를 타고 탈출하려는 영국과 프랑스 병사들의 다툼은 생존과 공존이라는 두 가지 가치를 대비하며 펼쳐진다. 놀란 감독은 관객에게 일종의 체험을 선사함으로써 이들의 갈등과 고민을 더욱 섬뜩하게 전달한다.

다른 공간, 다른 시점, 다른 시간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교차점을 찾아가는 관객들은 분주해진다. 하지만 비행기 연료가 다해 추락하며 탈출 작전이 마감되는 순간, 작품은 고요해진다. 초조함과 갈등으로 가득 찬 긴장감에 대조되는 이 순간은 아주 아름다운 장면이다.

덩케르크는 히어로의 존재가 없는 전쟁 영화로서, 전통적인 전쟁 영화의 서사를 거스르고자 한다. 그 대신 전투의 피로에 물든 심리적인 갈등과 생존의 의미를 다양한 관점에서 탐구한다. 이 작품은 히어로의 존재가 아닌 일반 인간으로서의 복잡한 내면을 보여줌으로써 공감과 생각의 공간을 열어준다.

추천

0

비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