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9월 17일: 사라 태풍으로 인한 추석 비극
1959년 9월 17일, 추석이었던 그날 한반도는 사상 최악의 태풍 사라의 강타를 맞았다. 이 태풍으로 인해 8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사망했고, 한국은 한국전쟁 발발 후 10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큰 인명피해를 겪게 되었다.
태풍 사라는 1959년 9월 12일에 발생하여 오키나와 일대를 지나 한반도로 진입했다. 이는 3등급 태풍으로서 무시무시한 위력을 가지고 한반도 남부를 휩쓸었다.
한국이 태풍의 영향권에 들자 동해 남부선을 포함한 경상도로 향하는 모든 열차 운행이 중단되었고, 전선전화 통신도 두절되어 곤란을 겪었다. 부산에서는 해일로 인해 방파제가 무너져 해수가 도시 내로 침투하여 중구 남포동과 영도구 대평동 일대가 물에 잠겼다. 또한 부산세관 소속 보세 창고도 침수되는 등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마산도 이 태풍에 큰 피해를 입었다. 바다는 산더미 같은 파도로 삽시간에 덮치며 거리의 나무들은 강풍에 뿌리가 뽑혀져 스러지고 날려다녔다. 한 마디로 마산 전체는 초토화된 아수라장이 되었다.
9월 17일 추석 저녁부터 며칠 동안은 전기가 끊겼다. 그날 마산의 극장들에서는 예정된 특별 상영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시내 전역이 정전되어 상영이 이뤄지지 못했다. 특히 이날은 추석이어서 일기예보도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아무런 준비 없이 차례를 지내고 있는 도중에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부산에서도 이와 같은 피해가 발생했을 것이다. 태풍 사라로 인해 우리 나라는 미천하게도 한국전쟁에서 겪은 상처가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상태에서 큰 인명피해를 더해야 했다. 이같은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 우리는 태풍에 대비하는 중요성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비책 마련의 필요성을 더욱 깨닫게 되었다.
태풍 사라는 1959년 9월 12일에 발생하여 오키나와 일대를 지나 한반도로 진입했다. 이는 3등급 태풍으로서 무시무시한 위력을 가지고 한반도 남부를 휩쓸었다.
한국이 태풍의 영향권에 들자 동해 남부선을 포함한 경상도로 향하는 모든 열차 운행이 중단되었고, 전선전화 통신도 두절되어 곤란을 겪었다. 부산에서는 해일로 인해 방파제가 무너져 해수가 도시 내로 침투하여 중구 남포동과 영도구 대평동 일대가 물에 잠겼다. 또한 부산세관 소속 보세 창고도 침수되는 등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마산도 이 태풍에 큰 피해를 입었다. 바다는 산더미 같은 파도로 삽시간에 덮치며 거리의 나무들은 강풍에 뿌리가 뽑혀져 스러지고 날려다녔다. 한 마디로 마산 전체는 초토화된 아수라장이 되었다.
9월 17일 추석 저녁부터 며칠 동안은 전기가 끊겼다. 그날 마산의 극장들에서는 예정된 특별 상영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시내 전역이 정전되어 상영이 이뤄지지 못했다. 특히 이날은 추석이어서 일기예보도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아무런 준비 없이 차례를 지내고 있는 도중에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부산에서도 이와 같은 피해가 발생했을 것이다. 태풍 사라로 인해 우리 나라는 미천하게도 한국전쟁에서 겪은 상처가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상태에서 큰 인명피해를 더해야 했다. 이같은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 우리는 태풍에 대비하는 중요성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비책 마련의 필요성을 더욱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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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
정말 최고예요!
김샛*
정말이지 이런뉴스는 올리지 말아주세요.
김홍*
이게 나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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