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독립유공자 오성규 귀국, 국민들의 환영 속
일본 내 유일한 생존 독립유공자 오성규 애국지사, 환영 속 영주 귀국
13일, 오성규 애국지사가 일본에서 영주로 돌아왔다. 오성규 애국지사는 광복군 출신으로 일본 내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독립유공자이다.
오성규 애국지사는 대한항공 KE2106편을 이용하여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출발, 김포국제공항에 도착한 후 입국장을 통해 귀국했다. 국가보훈부를 대표하는 박민식 장관과 함께 귀국한 오성규 애국지사는 휠체어에 태극기를 얹고 고국으로 돌아선 순간, 많은 국민들이 환영하는 인파로 가득찼다.
오성규 애국지사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일본에서 죽을 수는 없지 않느냐, 자기 나라에서 마지막까지 살아야지"라고 밝혔다.
김포국제공항에서는 오성규 애국지사를 환영하는 행사가 열렸다. 국방부 의장대가 애국가를 연주하며 오성규 애국지사는 태극기에 경례했다. 또한 해병대 의장대에서 군인을 대표하여 꽃다발을 전달하였다. 한국어린이역사합창단은 광복군 복무 당시 오성규 애국지사가 불렀던 광복군 제3지대가를 노래하였다.
김포공항을 떠나국립서울현충원으로 이동한 오성규 애국지사는 광복군 제3지대 장인 김학규 장군의 묘역에서 경례하며 환국 신고를 하였다. 이는 오성규 애국지사가 김학규 장군의 묘역에서 환국신고를 하고 싶었던 소망을 이룬 것이다.
1923년생인 오성규 애국지사는 일제 강점기에 주태석이라는 가명을 사용하며 중국 만주에 동광중학을 중심으로 이영순, 조승회 등과 함께 비밀 조직망을 구축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오성규 애국지사는 일제에 조직망이 노출되자 동지들과 함께 만주를 탈출해 중국 안휘성 부양의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했다. 1945년 5월에는 한미합작으로...
13일, 오성규 애국지사가 일본에서 영주로 돌아왔다. 오성규 애국지사는 광복군 출신으로 일본 내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독립유공자이다.
오성규 애국지사는 대한항공 KE2106편을 이용하여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출발, 김포국제공항에 도착한 후 입국장을 통해 귀국했다. 국가보훈부를 대표하는 박민식 장관과 함께 귀국한 오성규 애국지사는 휠체어에 태극기를 얹고 고국으로 돌아선 순간, 많은 국민들이 환영하는 인파로 가득찼다.
오성규 애국지사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일본에서 죽을 수는 없지 않느냐, 자기 나라에서 마지막까지 살아야지"라고 밝혔다.
김포국제공항에서는 오성규 애국지사를 환영하는 행사가 열렸다. 국방부 의장대가 애국가를 연주하며 오성규 애국지사는 태극기에 경례했다. 또한 해병대 의장대에서 군인을 대표하여 꽃다발을 전달하였다. 한국어린이역사합창단은 광복군 복무 당시 오성규 애국지사가 불렀던 광복군 제3지대가를 노래하였다.
김포공항을 떠나국립서울현충원으로 이동한 오성규 애국지사는 광복군 제3지대 장인 김학규 장군의 묘역에서 경례하며 환국 신고를 하였다. 이는 오성규 애국지사가 김학규 장군의 묘역에서 환국신고를 하고 싶었던 소망을 이룬 것이다.
1923년생인 오성규 애국지사는 일제 강점기에 주태석이라는 가명을 사용하며 중국 만주에 동광중학을 중심으로 이영순, 조승회 등과 함께 비밀 조직망을 구축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오성규 애국지사는 일제에 조직망이 노출되자 동지들과 함께 만주를 탈출해 중국 안휘성 부양의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했다. 1945년 5월에는 한미합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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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한*
이런 소식 정말 좋아요.
김한*
정말 대책없네요.
김한*
좋은 뉴스 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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