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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르 에포크’라는 말이 있다. 불어로 ‘아름다운 시절’을 뜻하는 이 말은 앞에 불어 정관사 La를 붙여 쓰면 유럽 역사 속에서 한 시대를 지칭하는 대명사로 변신한다. 이때 ‘벨르 에포크’는 대략 19세기 후반에서 1914년 이전까지의 시기를 가리킨다. 이 시절은 인류의 과학과 문화, 예술이 풍성하게 꽃피던 시기였다. 학자마다 벨르 에포크를 규정하는 시기가 조금씩 다르기는 해도, 모두가 동의하는 건 이 벨르 에포크 시대가 종식된 해다. 모호한 시작과는 달리 ‘아름다웠던 시절’의 끝은 명확히 1914년이다. 시작이 어물쩍하던 시대 구분이, 어째서 그 끝은 칼로 무 자르듯이 1914년이라는 말인가?

그건 바로 1914년이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해였기 때문이다. 과학과 문화가 급성장했기 때문에 아름다운 시절로 규정한 시대였지만, 사실 이 벨르 에포크가 진정으로 아름다울 수 있었던 건 바로 인류 역사에서 끝없이 지속되던 전쟁이 없던 유일한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피아니스트이자 하프시코드 연주자였던 ‘반다 란도프스카’ 또한 유대인이었다. 그녀는 1879년 변호사인 아버지와 언어학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4세 때부터 피아노를 연주한 신동이었지만,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모두 겪은 불행한 유대인 피아니스트였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태어나 바르샤바 음악원에서 공부한 그녀는 21세의 나이에 파리 스콜라 칸토룸 교수로 임명될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연주자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그녀의 공로는 피아노에 밀려 역사에서 사라질 뻔했던 악기, 하프시코드(쳄발로)를 되살려낸 것이다. 하프시코드는 그녀를 통해 다시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녀는 하프시코드의 아름다움과 특별한 음색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전하였다. 그녀의 연주는 사람들에게 악기의 잠재력을 일깨워주었고, 하프시코드를 다시 인기있는 악기로 만들어주었다.

반다 란도프스카는 유대인으로서 충격적인 역사를 겪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통해 사랑과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데 성공했다. 그녀의 이야기는 이제까지 잊혀져 있었던 하프시코드를 되살리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이다. 그녀는 악기만큼이나 아름다운 벨르 에포크 시대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그 시대의 끝이었던 1914년 이전, 그 아름다움을 꽉 안고 그녀는 음악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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