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

대한민국 창업정보의 모든것, 소상공인 창업뉴스


  • Banner #01
  • Banner #02
  • Banner #03
  • Banner #04
  • Banner #05

"다비드: 그의 삶과 작품, 그가 살았던 격동의 시대"

profile_image
작성자

창업뉴스


댓글

0건

조회

48회

작성일 23-07-16 11:38

d686b1383811fce26e2d2f87b5470a14_1724636607_0839.jpg
“어떻게 그런 식으로 투표를 할 수가 있어? 당신한테 생각이라는 게 있기는 해?”(아내)
“내가 투표까지 당신 시키는 대로 해야 해? 우리나라 미래를 생각하면 이럴 수밖에 없었다고!”(남편)
“나는 당신 같은 사람이랑은 도저히 못 살아. 우리 이혼해. 이혼하자고!”(아내)

아무리 그래도 “이혼하자”는 말은 홧김에 뱉은 말인 줄 알았는데…. 며칠 뒤 아내는 이혼서류 한 장만 남기고 진짜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3월, 둘은 법적으로 이혼합니다. 1793~1794년

도가 지나치다 싶지요. 다만 다비드가 던진 표가 보통 표는 아니었습니다. 혁명으로 물러난 왕 . 루이 16세는 다비드를 아끼고 밀어주던 사람이었던 데다 인품도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다비드는 혁명의 대의를 위해 ‘사형 찬성’에 표를 던졌고, 루이 16세는 근소한 표 차이로 단두대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평소 루이 16세를 좋아하고 존경했던 아내의 입장에서 이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고, 나폴레옹이 등장하고, 프랑스가 전 유럽을 상대로 전쟁하고, 패배해 다시 왕이 돌아오고…. 다비드는 그 모든 사건의 한가운데 서서 자신이 본 것을 기록했습니다. 그는 왜 그런 삶을 살았을까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이번 주 ‘그때 그 사람들’에서 다비드의 삶과 작품, 그가 살았던 격동의 시대를 되돌아봅니다. 영웅을 동경했던 청년 다비드는 1748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해는 서양미술사에서 중요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다비드는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보였으며, 1774년에 로망스코라제의 제자로서 그의 작품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는 동시에 혁명의 당대에 활동하면서 현실을 그리는 예술가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의 작품은 혁명과 전쟁의 시대를 반영하면서도 독특한 감성과 섬세한 기교를 표현하였습니다. 다비드는 현대적인 표현과 감정을 담고 있는 그의 작품으로써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와 고민을 다루어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의 작품은 당시를 넘어 일찍부터 인류의 명작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그의 사회적 영향력은 현재까지 이어져 영향력 있는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추천

0

비추천

0

한혜*


정말 미래적인 기술이네요. 어서 빨리 상용화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홍한*


이런 소식 정말 좋아요.

이동*


정말 최고예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많이 보는 기사

  • 게시물이 없습니다.
광고배너2
d686b1383811fce26e2d2f87b5470a14_1724637509_3615.jpg

광고문의 : news.dcmkorea@gmail.com

Partner site

남자닷컴 | 더큰모바일 | 강원닷컴
디씨엠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