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파 공작원의 모든 것: 원정화의 이야기
남파 공작원, 조선족 위장해 남한 침입...경찰관·군 장교 교제하며 군사기밀 빼돌려
2008년 8월27일. 이날은 여간첩 원정화(당시 34살)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날이다. 당시 원정화는 국군 장교들에게 성로비를 벌여 군사기밀을 빼오다 붙잡혀 충격을 줬다. 뿐만 아니라 수사를 통해 베일을 벗겨보니 그의 가족 모두 공작원인 것으로 밝혀졌다.
원정화는 1974년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태어났다. 1988년 함북 부령군 고무산여자고등학교 4학년 때 학업성적이 우수해 이중 영예 붉은기 휘장을 받았다.
남파 공작원을 기르는 특수부대에서 1989년부터 훈련을 받던 원정화는 3년 뒤 머리 부상을 당해 의병제대했다.
그 후 백화점에서 물건을 훔쳐 교화소에 수감됐고 풀려난 후에도 또다시 아연 5t(톤)을 훔쳤다. 절도가 당국에 적발됐지만 친척의 도움으로 절도 사건이 무마되자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의 공작원으로 포섭돼 다시 남파 공작원의 길을 걷게 됐다.
2001년 당시 중국에서 활동하던 원정화는 남파 간첩 지령을 받고 2001년 10월 임신 7개월 상태에서 국내에 발을 들였다. 뱃속 아기의 아버지는 중국에서 활동하면서 동거한 한국인 사업가였다. 이 와중에도 원정화는 한국에 들어오기 위해 다른 한국인 근로자 최 모씨와 맞선을 보고 결혼한 뒤 국내에 잠입한다.
원정화는 아이를 출산한 뒤 2002년 10월 국가정보원에 탈북자로 자수해 국정원을 감쪽 같이 속이고 본격적인 간첩활동을 벌였다. 잠입 도구로 활용한 남편 최씨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혼했다.
원정화는 2002년부터 2006년 12월까지 중국을 수시로 드나들며 대북 정보요원 활동내역과 남한정보기관 연계사업가 포섭, 대북 정보요원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이 모든 활동을 통해 원정화는 국가보안에 큰 위협을 가했고, 결국 2008년 8월27일에는 당국에 의해 구속기소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이 사건은 국가보안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으며, 남파 공작원의 위협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는 시금석이 되었다. 이를 통해 국가는 더욱 강화된 안보체계를 구축하고, 국민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2008년 8월27일. 이날은 여간첩 원정화(당시 34살)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날이다. 당시 원정화는 국군 장교들에게 성로비를 벌여 군사기밀을 빼오다 붙잡혀 충격을 줬다. 뿐만 아니라 수사를 통해 베일을 벗겨보니 그의 가족 모두 공작원인 것으로 밝혀졌다.
원정화는 1974년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태어났다. 1988년 함북 부령군 고무산여자고등학교 4학년 때 학업성적이 우수해 이중 영예 붉은기 휘장을 받았다.
남파 공작원을 기르는 특수부대에서 1989년부터 훈련을 받던 원정화는 3년 뒤 머리 부상을 당해 의병제대했다.
그 후 백화점에서 물건을 훔쳐 교화소에 수감됐고 풀려난 후에도 또다시 아연 5t(톤)을 훔쳤다. 절도가 당국에 적발됐지만 친척의 도움으로 절도 사건이 무마되자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의 공작원으로 포섭돼 다시 남파 공작원의 길을 걷게 됐다.
2001년 당시 중국에서 활동하던 원정화는 남파 간첩 지령을 받고 2001년 10월 임신 7개월 상태에서 국내에 발을 들였다. 뱃속 아기의 아버지는 중국에서 활동하면서 동거한 한국인 사업가였다. 이 와중에도 원정화는 한국에 들어오기 위해 다른 한국인 근로자 최 모씨와 맞선을 보고 결혼한 뒤 국내에 잠입한다.
원정화는 아이를 출산한 뒤 2002년 10월 국가정보원에 탈북자로 자수해 국정원을 감쪽 같이 속이고 본격적인 간첩활동을 벌였다. 잠입 도구로 활용한 남편 최씨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혼했다.
원정화는 2002년부터 2006년 12월까지 중국을 수시로 드나들며 대북 정보요원 활동내역과 남한정보기관 연계사업가 포섭, 대북 정보요원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이 모든 활동을 통해 원정화는 국가보안에 큰 위협을 가했고, 결국 2008년 8월27일에는 당국에 의해 구속기소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이 사건은 국가보안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으며, 남파 공작원의 위협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는 시금석이 되었다. 이를 통해 국가는 더욱 강화된 안보체계를 구축하고, 국민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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