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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옥, 항일투쟁의 청년사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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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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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4-01-12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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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종로경찰서 폭탄투척 사건과 김상옥의 항일투쟁"

1923년 1월 12일 오후 8시, 일제강점기였던 시절 종로경찰서에 폭탄이 투척되었습니다. 이 폭발로 인해 건물의 일부가 파손되었고, 행인 7명이 중경상을 입는 등 큰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의 범인으로는 3년 전 수배 대상자에 올라있던 김상옥 의사가 지목되었습니다. 김상옥은 자신을 잡으러 온 일본 경찰과 총격전을 벌였으며, 이 과정에서 약 1,000여명에 달하는 일본 경관과 전투를 벌였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김상옥은 1889년에 지금의 종로 효제동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에는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힘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김상옥은 14살 때부터 낮에는 철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야학에서 공부하며 성공한 청년사업가가 되었습니다. 그는 창신동에서 운영하던 영덕철물상회를 운영하며 종업원 50명을 고용한 정도로 규모가 컸습니다.

김상옥은 1919년 3·1운동 이후에 본격적으로 항일 운동에 뛰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반일 비밀 조직인 혁신단을 결성하고, 지하 신문 혁신공보를 발행했습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40일간 고문을 당했습니다. 동년 12월에는 암살단을 조직하여 일본 고관 및 친일민족반역자에게 응징 및 숙청을 가했습니다.

1920년에는 조선총독인 사이토 마코토 및 일본 고관의 암살을 계획했으나,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어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상옥은 중국에서도 독립운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김구, 조소앙 등과 독립운동 거사 계획에 참여하며 동시에 의열단에 입단했습니다.

1922년 12월, 김상옥은 권총과 폭탄을 소지하고 경성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다시 한번 충격적인 사건을 계획했는데, 바로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실패로 끝났고, 김상옥은 후속 계획으로 조선총독의 암살을 추진하게 됩니다.

이러한 김상옥의 항일투쟁은 그의 개인적인 용기와 결단력으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는 청년사업가로서의 성공과 함께 국가의 독립을 위해 힘썼으며, 그의 투쟁은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고 항일운동을 격려하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김상옥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그의 희생은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한 길에 큰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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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


정말 대책없네요.

홍한*


이런 소식 정말 좋아요.

이동*


정말 최고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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