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의학과 내분비학 선구자 김동수 박사가 97세로 세상을 떠났다
핵의학과 내분비학의 선구자였던 김동수 박사가 28일 세상을 떠났다. 그는 평양에서 태어나 7남매 중 맏이로 자라났으며, 젊었을 때는 국내 핵의학과 내분비학의 선두주자로 활약했다. 그러나 노년에는 통일과 시민운동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6·25전쟁 당시 그는 피란길을 택해 부산으로 도피했으며, 그 시기에 척추후만증으로 고통을 겪었다. 걸음이 천천히 갈 때는 가족과 떨어지는 아픔을 견뎌내야 했다.
전쟁 고아를 치료하는 군의관으로 일하면서 의학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부산대 의대에 진학하게 되었다. 늦은 나이에 의사의 길을 걷게 된 그는 고(故) 장기려 박사의 지도를 받으며 내분비학 분야에서 업적을 남겼다. 당시에는 갑상샘 질환이나 당뇨병 등을 다루는 내분비학이 아직 내과에서 분리되지 않은 초기였다.
김동수 박사는 독일에서 핵의학을 공부한 안창수 전 부산대 교수와 함께 동위원소를 이용한 갑상샘 촬영 장비를 진단검사에 처음 도입하는 등 내분비학 연구에 헌신했다.
말년에는 북한 동포를 돕는 일에 힘썼다. 2004년 북한 용천 기차역 폭발 사고 이후 그는 2005년에 부산겨레하나의 상임대표로 선임되었고, 2007년에는 김일성종합대학 안에 항생제 공장을 설립했다. 그의 핵의학 발전에 대한 공로로는 2006년에 청봉상을 받기도 했다.
김동수 박사의 떠남은 핵의학과 내분비학 분야에 큰 간절함을 느끼게 한다. 그의 헌신과 공헌은 우리나라 의학 발전에 큰 영감을 주었으며, 그의 희생과 헌신은 젊은 의사들에게 큰 가르침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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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고아를 치료하는 군의관으로 일하면서 의학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부산대 의대에 진학하게 되었다. 늦은 나이에 의사의 길을 걷게 된 그는 고(故) 장기려 박사의 지도를 받으며 내분비학 분야에서 업적을 남겼다. 당시에는 갑상샘 질환이나 당뇨병 등을 다루는 내분비학이 아직 내과에서 분리되지 않은 초기였다.
김동수 박사는 독일에서 핵의학을 공부한 안창수 전 부산대 교수와 함께 동위원소를 이용한 갑상샘 촬영 장비를 진단검사에 처음 도입하는 등 내분비학 연구에 헌신했다.
말년에는 북한 동포를 돕는 일에 힘썼다. 2004년 북한 용천 기차역 폭발 사고 이후 그는 2005년에 부산겨레하나의 상임대표로 선임되었고, 2007년에는 김일성종합대학 안에 항생제 공장을 설립했다. 그의 핵의학 발전에 대한 공로로는 2006년에 청봉상을 받기도 했다.
김동수 박사의 떠남은 핵의학과 내분비학 분야에 큰 간절함을 느끼게 한다. 그의 헌신과 공헌은 우리나라 의학 발전에 큰 영감을 주었으며, 그의 희생과 헌신은 젊은 의사들에게 큰 가르침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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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
정말 최고예요!
김샛*
정말이지 이런뉴스는 올리지 말아주세요.
김홍*
이게 나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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