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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 잊혀진 역사의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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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회

작성일 23-11-13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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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 국가애를 거치다

딸이 어릴 적, 대화를 나누다 이완용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딸은 이완용이 누군지 모른다고 했다. 도대체 학교에서 공부를 어떻게 했길래 매국노 이완용을 모르냐고 야단을 쳤다. 이 일 이후 딸이 반 친구들에게 물어보았더니 태반이 이완용을 모른다는 것이다. 아마도 아빠에게 야단맞은 것이 억울했던 모양이다.

이완용을 기억한다는 것은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 유관순 열사를 기억하는 것 만큼이나 중요하다. 부끄러운 과거, 수치의 역사야말로 미래를 창조적으로 빚을 재료이기 때문이다.

그가 죽은 1926년에 공중화장실이 깨끗해졌다는 보도가 있었다. 당시 화장실의 주된 낙서가 매국노 이완용을 죽이자는 내용이어서 욕할 대상이 사라지자 낙서도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완용이 죽었을 때 동아일보는 "그도 갔다. 필경은 붙들려 갔다. 겹겹이 있는 순사의 파수와 돈과 폐물 벽의 견고한 보호막도 저승사자의 들이닥침을 어찌하지 못했다… 살아서 누린 것이 얼마나 대단하였는지 이제부터 받을 일이다. 진실로 기막히지 아니하랴"(1926년 2월 13일)라는 사설을 실었다. 일제 치하에서 총독부가 이완용을 지키고 감쌌더라도 민족의 배신자인 그에게 쏟아지는 감정의 분출은 막지 못한 것이다.

그런 이완용이 중림동에 살았었다. 위치를 특정할 수는 없으나 자료를 종합해보면 지금의 중림종합사회복지관 주변이다. 그 앞의 몇몇 허름한 한옥자리가 이완용의 집이 아니었을까 추정해 본다. 이완용은 우봉 이씨로 태어난 곳은 경기도 판교이다. 자녀가 없는 먼 친척인 이호준의 집 양자로 들어갔다. 이호준은 처세술의 달인으로 고종 휘하에서 정치적 입지를 다진 인물이다.

이완용은 양부를 따라 지금의 헌법재판소 자리인 안국동의 저택에서 살았다. 이완용은 매국노로 비판되는 시기에도 현대적인 사상에 기반한 문집을 남기며 현실적인 정치적 조치와 더불어 독립을 위한 운동을 계속했다. 그는 독립을 위해 시위를 주도하고, 신문을 편집하며, 추방을 당하더라도 자신의 정신을 지키며 끝까지 투쟁했다.

이완용은 한국의 독립과 국가애에 헌신한 위대한 인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존재를 알고 그의 이야기를 전파해야 한다. 더 나아가 우리는 이완용과 같은 미래를 향한 열정과 희생을 가진 우리 조상들의 행적을 되새기며, 그들의 노고와 헌신을 기리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완용의 존재와 업적을 잊지 말고, 그가 가르쳐준 국가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이어받아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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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샛*


정말이지 이런뉴스는 올리지 말아주세요.

김한*


정말 대책없네요.

홍한*


이런 소식 정말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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