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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신각 종의 침묵과 정태신의 만세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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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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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4-01-05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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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역사 속 보신각, 경성방송국의 비극적인 신청

일제강점기인 1932년 12월, 경성방송국은 다른 일본의 방송국들과 함께 제야의 종을 릴레이로 송출하려고 했다. 이 행사는 각 지역을 대표하는 종소리로 한 해를 시작하는 의미를 가졌으며, 경성방송국은 서울의 시간을 알린 보신각 종 소리를 생각하여 종의 관리를 담당한 조선총독부 학무국에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그들은 암초에 올랐다. 경무국은 방송국을 관할하는 체신국에 압력을 가해 종의 사용을 금지시켰다. 이로 인해 1932년 행사는 일본의 사찰들을 거쳐 서울에서도 보신각 종 대신에 혼간지 사찰의 종이 울리고, 나라 도다이지의 종소리로 끝났다. 릴레이 타종행사는 그 후로도 계속되었지만 보신각 종은 결국 나오지 못하였다.

이미 1928년에는 상인들이 모인 중앙번영회에서 보신각을 개축하여 개점과 폐점 시간을 알리기 위해 500원을 기부하는 계획을 했지만 허가를 받지 못한 적이 있었다.

대한제국 시대까지 보신각은 서울 주민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 밤 10시에 하루를 막으며 33번을, 새벽 4시에 새로운 날을 열며 28번을 울렸다. 이를 인경과 파루라고 부르며, 사람들은 보신각을 인경이라고도 불렀다.

국권 피탈 직전 정부는 보신각이 낮은 위치에 있고 단층 건물이라 소리가 멀리 전해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높은 건물로 다시 지어야 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오포(午砲)와 사이렌이 종의 기능을 대신하게 되면서 보신각 개축 이야기는 사라지게 되었다. 결국 종소리마저 잊혀지게 되었다.

보신각의 종 침묵은 3.1운동에서 깨어났다. 청년 정태신은 보신각에 들어가 종을 난타하며 만세시위를 이끌었다. 그는 일제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대한민국의 독립을 향한 열정을 보여주었다.

흑역사 속에 묻힌 보신각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그 시대의 억압과 저항을 상기시키며, 우리의 역사와 정체성을 되새기게 한다. 이제 우리는 그 동안 잊혀져 있던 보신각과 그 소리를 되찾아 그 의미와 가치를 다시 발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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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


좋은 뉴스 담아갑니다.

이동*


정말 최고예요!

신영*


코리아 핀테크 위크 2023 멋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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